novel/합작

[클로버(CLOVER)/사나다 키요히데 드림]CC가 되기까지

페이지관리자 2015. 12. 28. 22:23



클로버/사나다 키요히데 드림

CC 드림 합작에 참가했습니다.

합작의 주제에 맞게 대학교AU입니다. 고로 원작의 진행과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합작 주소는 이쪽으로→ http://sgy950.wix.com/campuscouple


오리주 이름 및 설정 있습니다.

개인 해석 및 캐붕 주의. 날조 주의. 비문, 오타 주의.






시즈카는 제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나다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강의를 진행하시던 교수님의 시선이 사나다에게로 잠시 향했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볍게 흔드는 그 손길에 사나다는 금세 졸음에서 깨어 흐릿한 시선을 다시 칠판으로 주고 있었다. 다행히 사나다가 졸았던 순간은 고작 5분 정도였던데다, 자신의 착각이었는지 교수님은 따로 사나다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지적하는 일 없이 계속 강의를 진행했다. 

조금 안도하는 표정으로 사나다를 흘끗 바라보자 흐리멍덩한 시선이어도 어떻게 깨어있으려는 사나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다시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도 아닌 대학교였다. 대학 진학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던 사나다의 선택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놀라웠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사나다는 갑작스럽게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사실 그는 진학보다는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결정에 상당히 놀라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나다는 공부와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으니까.

놀란 것은 시즈카 뿐만이 아니라 주변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족이었던 에리나 역시 그랬다. 그만큼 생각지도 못한 결정이었고 몇몇은 헛된 꿈을 꾸는 거 아니냐며 놀리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꿈을 꾸듯 목표만 정해놓았다고 하기엔 사나다는 나름대로 이것저것을 알아보며 정말로 공부를 하기 위한 발판을 다져나갔다. 물론 공부를 거의 안 하던 입장에서 준비한 것이었기 때문에 영 허술한 부분이 더 많았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사나다가 얼마나 진지하게 대학진학을 꿈꾸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시즈카는 사나다의 결정에 전폭적으로 지지를 해주었다. 사나다가 빠르게,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부분부터 심화 부분까지 정리한 노트를 주고, 일주일에 두 번씩 과외도 해주었다. 사나다가 갈 수 있는 대학을 함께 알아봐 주기까지 했다. 가족이나 선생님보다 훨씬 세심하고 꼼꼼하게 사나다를 챙겨주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 결과 사나다는 멋지게 대학에 합격. 중고등학교 시절의 사나다를 생각하면 정말 기적과도 같은 결과였다.

그리고 그 대학은 시즈카가 특정 과를 목표로 했던 대학이었기에 두 사람은 중학교 이후 다시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과도, 건물도 다르고 기껏해야 교양 시간에만 잠깐 만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시즈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사나다는 입학 이후 학교에서는 시즈카에게 거의 말을 잘 걸지 않는 편이었다. 조금 불편했던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것까진 알 수 없었지만 사나다 나름의 배려일 것이라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사나다가 원치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시즈카 역시 사나다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대학에 와서도 남들과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을 즐기지 않는 것은 여전했는지 사나다는 교내에서 마주칠 때마다 언제나 혼자 있곤 했다. 무서워 보이는 외모 탓일까 대화를 하는 친구까진 생긴 것 같았지만, 키쿠치만큼 가까이 함께하는 친구는 아직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키쿠치 위치의 친구가 생기기엔 조금 이른 시기이긴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고작 한 달. 아직은 좀 이른 판단일지도 몰랐다. 그만큼의 절친이 벌써 생길 리가 없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줄곧 그런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사나다가 키쿠치와 함께 있을 때처럼 즐거운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어깨를 톡 치는 것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리니 최근 자신에게 열렬하게 어떤 제의를 해오는 친구가 있었다.


"생각해봤어?"

"음, 역시 나는 좀…."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진짜 부탁할게. 응? 너 외엔 부탁할 사람이 없어. 인원 부족하면 안된단 말이야. 제발."


거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듯 애원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시즈카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미팅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을뿐더러, 관심조차 없어 줄곧 거절해온 것이 벌써 일주일째였다. 질린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찌나 절박하면 머릿수를 채워달라며 이렇게까지 저에게 애원할까 싶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시즈카는 정말 자리를 채워주는 목적으로만 나갈 것이고 커플이 성사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나갈 것을 약속했다. 설마 별일이야 있겠느냐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당부였다.

친구는 시즈카의 허락에 뛸 듯이 기뻐하며 같이 나가기로 한 무리에게 바로 그 소식을 알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들은 무척이나 환영해주었다. 미팅을 위한 모임에까지 바로 오게 되었으니 말이었다.

미팅에 나가는 친구들은 상당히 기대되는 모양이었는지 내일 옷을 어떻게 입을 것이라는 둥, 머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는 둥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시즈카는 단순히 미팅에 나간다는 사실을 허락했을 뿐 그 외에 상대측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를 조용히 물었다.


"어디 과랑 미팅하는 거야?"


친구의 입에서 나온 과 이름은 사나다가 있는 과였다. 그 소리를 듣자 혹시나 싶어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사나다에겐 딱히 미팅한다는 이야길 하지 않았다.


"거기 이번 신입생 중에서 되게 무섭게 생긴 애가 있는데 걔만 안 나오면 좋겠어."


대충 외모적인 특징을 듣고 있자니 어딜 봐도 사나다의 얘기에 쓴웃음이 났다. 깡패 아니야? 놀던 애 같아. 엄청 무섭지. 역시 타인의 눈엔 그의 성격이 전부 드러나는 게 아니라서 무섭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뭐, 처음 보는 사람은 당연히 조금 겁이 날 인상이긴 하지만 나쁜 애는 아닌데. 저도 모르게 반박을 하려는 것을 꾹 참아내고 있자니 참가를 줄기차게 부탁했던 친구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냈다.


"괜찮아, 이번에 미팅하는 건 신입생들이 아니거든."

"그러면?"

"2학년 선배들."


노골적으로 안도하는 한숨 소리가 곳곳에서 터졌다. 어지간히도 사나다가 나오지 않길 바란 모양이었다. 뭐, 시즈카도 다른 의미로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으니 별반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럴 일이 벌어질 일은 없겠지만, 미팅 장소에서 사나다와 마주치는 것을 생각하니 여러 가지로 조금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사나다는 자신이 미팅에 나간다는 일을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친구니까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을까.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을지도 몰랐다. 사나다가 짓지 않은 표정을 상상해보니 절로 기분이 어두워졌다.

사나다에게 말을 해야 할지, 말을 한다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미팅이 있는 날이 밝아왔다. 너무 꾸미지 않은 티를 내면 나름대로 미팅이란 자리에서 무례일 것 같아 아침 일찍부터 일어났다. 화장은 평소보다 옅게, 하지만 꾸미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게끔. 오토바이를 타야 했기에 나풀거리는 치마 대신 허벅지에 달라붙는 청바지를 꺼내입었다. 세미 부츠까지 준비하고 거울을 보자 영락없이 미팅이라기보단 평상시 투어링 복장이다. 너무 편해 보이나? 이쯤 되니 더 모르겠다. 애초에 미팅에 나가본 적이 있어야 알 일이다.

사나다에게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팅의 ㅁ조차 꺼내지 못했다는 소리다. 약속을 잡자는 제의가 한 번 있었지만, 미팅이 있는 그 날은 볼일이 있어서 안 된다며 토스했더니 자연스레 다른 날이 물 위에 올랐다. 무슨 약속인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건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 배려였고, 사나다의 다정함이었다. 그걸 알고 있는데도, 그 배려에 위로받던 순간이 분명히 있었는데도 일언반구 없이 흘려보낸 사나다에게 섭섭했다.

사실 이것만큼 우스운 감각이 없었다. 연인도 아니고 고작 친구인데 그런 식의 속박을 기대한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하물며 썸을 타고 있었다면 어느 정도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조차 아니다. 완벽하게 친구 사이로만 기능하는 이 관계에서 이 섭섭함만큼 길을 잃은 감정이 또 뭐가 있을까.

바랄 위치가 아닌데 언제나 그 이상을 바라고 마는 자신의 꼴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어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지금이라도 약속을 취소하고 싶었지만 그건 또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서, 시즈카는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쓴웃음을 지으며 약속 장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미팅 장소에 도착하자 반갑게 맞이하는 친구들과 더불어 상대측 사람들이 보였다. 그 상대 쪽의 시선을 느끼자마자 바닥에서 가시가 튀어나와 온몸을 파고들어 속박하는 기분을 느꼈다. 도망치고 싶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불편해져서 저절로 정신을 놓게 되는 것 같았다. 평소 이런 상황에서 대화를 어떻게 했더라?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들이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미팅이라는 상황이 실감이 나서 손에 식은땀이 났다.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공황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그저,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무슨 대화들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넋을 놓은 지 한참을 지나고 있었다. 눈치껏 파악해보니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라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그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날아온 말들이 없었다면 편해졌을 것이다.


"너도 2차 갈 거지?"


보이지 않는 손이 숨통을 다시 죄어 오는 것 같았다. 마음은 당장에 벗어나라고 경고음을 마구 울리고 있었다.


"전 이만 갈…."

"같이 간다고? 알았어!"


말을 자르면서 치고 들어오는 여러 목소리에 갑갑한 숨통도 잊고 삽시간에 불쾌함을 느꼈다. 모두 무시하고 돌아가 버릴까. 이쯤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머릿수를 채우러 나온 것뿐이었으니, 2차까지는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이대로 가도 자신은 할 일을 다 한 셈이다.

속내에서 조금 올라오던 화를 꾹 누르며 돌아갈 의사를 표하려던 순간 자신에게 끈질긴 제의를 하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친구는 조금 안달이 나 보이는 표정이었다. 상대측과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이 너무나도 명백해서, 시즈카는 저도 모르게 김이 새는 것을 느꼈다. 굳이 자신이 친구의 입장을 전부 생각해줄 필요야 없지만, 그들은 이 자리를 원했던 이들이었다. 그걸 다시 인식하고 나니 조금 화가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한 번. 한 번만 더 참아보기로 했다. 미팅에 나온 다른 사람들이 무슨 죄겠는가. 그들은 즐기고 싶어서 나온 것을. 애초에 미팅이라는 자리에 걸맞지 않은 의도로 나온 것은 자신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벌써 2차를 가기 위해 옷을 전부 챙겨입고 있었다. 시즈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조용히 겉옷과 짐을 챙겼다. 2차는 예상했던 대로 술집이었다.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형수처럼 무리의 가장 뒤쪽에서 천천히 걸어가던 시즈카는 저 멀리서 낯익은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마키? 마키 맞지? 오랜만이네."


시즈카의 부름에 마키는 슥 돌아보고는 상대가 시즈카인 것을 확인했는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마키는 집?"

"그래. 너는?"

"미팅."


곤란한 듯 웃는 시즈카의 모습에 마키는 사나다의 행방을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둘이 같은 학교에 갔다고 얘긴 들었지만, 과도 달랐고 무엇보다 그녀가 항상 사나다와 다니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연인 사이까진 아니던가. 서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미팅을 나왔다고 하니 조금 이상해 보이긴 했으나 마키는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님을 곱씹었다. 어쩌면 좋아하는 감정이 식었을 수도 있고, 서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곤 해도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괜한 상관 말자. 마키는 그런 생각을 하며, 가벼운 인사 후에 시즈카와 헤어져 원래 자신의 목적대로 집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곤란해 보이던 그 웃음이 조금 마음에 걸려서, 어느새 정말 드물게 오지랖을 부리며 사나다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귀찮다'는 생각은 덤으로.

한편 마키와 짧은 재회 이후 술집으로 이동하게 된 시즈카는 더욱 불편함을 느꼈다. 애초에 기쁘게 나온 자리가 아니라서 저 혼자 조금 껄끄러워하던 차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시선은 몰렸고 원치 않는 주목을 받은 데다 2차까지 가게 되었으니 당연했다. 본래라면 미팅을 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곧바로 돌아왔어야 했는데 어영부영 친구를 배려하다 보니 결국 2차까지 오게 된 것이다. 역시 아까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돌아가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 애매한 배려심이란 참 어느 쪽에나 독이다.

2차까지 함께 오게 된 것이 다행이었는지 친구들은 아닌 척해도 즐거워 보였다. 상대측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즐겁지 않은 사람이 자신뿐이었고, 그 사실이 더욱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

구원을 바라는 것처럼 핸드폰을 꺼내보았지만 와 있는 메일이나 부재중 전화 목록은 없었다. 약속이 있다고 미리 얘기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사나다에게서 연락이 오길 내심 바랐던 탓에 기분이 울렁거렸다.

잠시 숨통이라도 트고 싶어서 도망치듯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을 다녀오자마자 잔을 받고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 온갖 질문과 화제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가볍게 핸드폰을 놓아두었던 자리를 훑었지만 분명 화장실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핸드폰은 눈에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가방에 다시 넣어두었나? 확인 차 가방 쪽으로 손을 뻗노라면 자꾸 건배 제의가 들어와서 뒤지는 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핸드폰만이 자신이 그나마 안도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는데, 눈 앞에 보이지 않자 속이 탔다. 어쩌면 사나다에게서 연락이 올 수도 있을 텐데. 만약 연락이 왔는데 못 받았던 거라면 어쩌지.

단순한 바람에 불과한 내용이었지만, 그럼에도 시즈카는 '어쩌면'이라는 희망을 놓칠 못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했다. 사나다에게 연락이 와서 이 자리를 떠나고 싶다. 그 바람은 허무할 정도로 흐릿한 연기가 되어 주변을 감쌀 뿐, 시즈카에게 그 어떠한 도움을 주지도 못했다.

자신에게 권해지는 잔을 거절하지 못하고 첫 잔을 받으면서, 시즈카는 그 헛된 희망을 내려놓아야 함을 깨달았다. 필요할 때만 사나다를 찾는 자신은 여전히 비겁했다.

시즈카는 술을 즐기지 않았다. 취기가 쉽게 오르는 등의 일 때문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굳이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술자리에서는 예의상 받는 첫 잔과 분위기에 맞추는 정도로 해서 겨우 두 세잔 정도만 마실 뿐이었다. 오늘도 미팅을 학수고대하던 친구를 위해 모든 잔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지만 계속 귀찮을 정도로 권해오는 상대 덕에 시즈카는 조금 짜증이 일었다. 원해서 온 술자리가 아닌 만큼 더욱 그랬다. 보통 이 정도로 권유를 거절하면 못하는구나 싶어 가만 내버려두기 마련인데 이 남자는 도통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나다라면 이러지 않을 텐데.

자연스럽게 사나다를 두고 비교하면서 몇 번이고 뱉었던 거절하는 언사를 뱉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한 잔만 더 하자. 기껏 만났는데."

"아까부터 자꾸 그렇게 얘기하셔서 벌써 몇 잔이나 마셨는걸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전 미팅을 하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니라서요."


결국, 조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대꾸해버렸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시즈카는 친구를 향한 미안함을 조용히 곱씹었다.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분위기를 망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과하게 권유하는 선배에게 억지로 맞춰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아, 뭐야. 분위기 망치고."

"술 한 잔 받는다고 죽냐?"

"그럼 미팅에 왜 나온 건데?"


예상했던 이런 반응이 나온다 해도 말이었다. 예상했던 바지만, 울컥 짜증이 치솟았다. 동시에 사나다가 보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나온 벌인 걸까. 역시 2차까지 오지 말았어야 했다.


"싫다는데 술은 그만 주시죠, 선배."


익숙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헬멧을 쥔 사나다가 평소보다 험악한 표정을 지은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키요? 네가 어떻게?"

"넌 술도 안 마시는 애가 여기서 뭐 해? 전화도 안 받고 문자에도 답 없어서 걱정했잖아."

"미안, 핸드폰 잃어버린 것 같아. 그런데 어떻게 알고 왔어?"

"마키가 지나가다가 널 봤다고 해서 이 근처 돌아다녔어. 가자."


시즈카는 슬쩍 친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가, 이내 대답 없이 겉옷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미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연락되지 않는다고 이곳 주변을 계속 돌아다니며 저를 찾아다녔을 사나다에게 훨씬 미안했다. 그리고 그 표정. 조금 전 짓고 있던 그 험악한 표정은 사나다가 화가 났을 때 짓는 것이었다. 비겁한 짓을 하는 상대를 보았거나, 에리나를 건드린 사람을 보았을 때의 그런 표정.

단단히 화가 났구나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 그만큼 미안했다. 한가로이 놀고 있던 저에게 화가 난 것 같아서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거친 호흡을 아닌 척 고르는 모습을 보니 분명히 이 술집, 저 술집을 뛰어다닌 것이 분명했다. 이 근처는 술집이 밀집된 곳이라 건물 층마다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열심히 찾아다녀 준 것이다. 그렇게 찾아주었는데, 남겨질 친구의 기분까지 배려해줄 수가 없었다.

내밀어 주는 헬멧을 얌전히 받아들다 문득 학교에 두고 온 오토바이가 생각이 났다. 2차까지 올 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일찍 돌아갈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예감에 그냥 왔기 때문이었다.


"나 학교에 오토바이 두고 왔는데."

"됐어. 태워다줄게."

"나 내일 1교시부터 있어."

"알아. 그러니까 태워다준다고."


지금만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내일 아침까지라며 단호하게 이야기해주는 목소리에 짧게 눈을 감았다. 언제나 이런 배려가 고마웠다. 정작 사나다는 내일 오후 강의뿐인데.


"먼저 갈게, 미안."

"어, 으응."

"죄송하지만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사나다는 꽤나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시즈카의 등을 살짝 안듯이 밀어냈다. 얼른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 의도는 시즈카에게 명확히 전해졌던 모양인지, 시즈카는 별다른 반응 없이 사나다의 품에 안긴 것 같은 자세 그대로 술집을 나왔다.

받았던 헬멧을 쓰고 익숙하게 사나다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힐끗 헬멧을 쓰는 사나다의 모습을 보면서 살며시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에리나는?"

"집에."


에리나를 데려다주고 온 걸까. 사나다를 귀찮게 한 것이 못내 미안해서 옷자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걱정 많이 했어?"

"핸드폰 잃어버렸다며. 어쩔 수 없지."


묻는 말에 부정은 없었다. 많이 걱정했구나. 그 말에 미안함보다 먼저 기뻐 버린 건 역시 교활한 거겠지.

그 교활함이 내비쳐버릴까 봐 사나다의 등에 어리광을 부리듯 파고들었다. 언제나 이 순간이 좋았다. 자신과 사나다를 지나치는 온갖 불빛과 사람들 속에서 같은 속도로 함께 하는 건, 단 둘뿐이었다.


"미안."

"사과할 이유 없잖아."

"그래도 하고 싶어. 데리러 와줘서 고마워."


사나다는 그에 대해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하게 그 사과가 전달된 느낌을 받았다.


"다행이네."

"어?"

"마키가 네가 곤란한 상황이라고 해서 또 불량배들이랑 시비가 붙은 줄 알았어. 하기야 그랬으면 마키가 전화하는 대신 먼저 해치웠겠지만."

"마키가 그랬어?"


너무 얼굴에 티가 났던 걸까 싶어 조금 창피해졌다. 그 와중에 곤란해 보인다는 것만으로 사나다에게 연락해준 마키에게 내심 고마웠다. 마키가 아니었더라면 오늘 꼼짝없이 그 불편한 자리에 끝까지 있어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키에게는 언제나 참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구나. 내일 연락해서 고맙다는 표시로 밥이라도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연락을 하고, 연락이 닿지 않자 곧바로 찾으러 와 준 사나다에게 다시금 기뻐져서 붉어진 얼굴이 거울로 비칠까 좀 더 등으로 파고들었다. 역시 너무 좋았다. 사나다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를 정도로.



다음 날, 사나다는 어제 말했던 것처럼 아침부터 시즈카를 데려다주러 나왔다. 1교시부터 있는 시즈카가 늦지 않게 일찍부터 나와 학교에 태워다주고, 졸리다며 어디론가 가는 사나다의 모습은 이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침부터 고생시킨 것은 미안했지만, 다행일까. 어제의 일은 이제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전공 수업을 듣고 짐을 챙겨서 이후 있을 교양 과목 강의실로 향하던 도중 미팅을 주선했던 친구가 시즈카를 불러 세웠다. 죄책감을 느꼈던 모양인지 친구는 시즈카 몫의 음료수를 건네주며 진심으로 사과를 건넸다.


"남자친구가 그 과에 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어제 일은 미안해. 걔한텐 미안하다고 전해줘."


미안한 표정의 친구를 보며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부정하면 앞으로도 그런 일이 생겨버릴까 봐 이런 식으로 방지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여러 의미로 거짓말이지만 이 정도의 거짓말은, 이 정도의 허풍은 괜찮지 않을까. 서로 좋아한다거나 사귀자는 말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사나다와 가장 가까운 이성 친구라고 자부할 수 있는데. 나름대로 좋은 감정이 오갔노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러고 보니 어제 내가 가고는 괜찮았어?"

"아니, 사람들이 별로인 거 같아서 우리도 금방 헤어졌어. 네 덕분에 인성도 알았지, 뭐."


2차를 가자고 말을 끊을 때부터 알아봤다며, 친구는 투덜거렸다. 뭐 그렇게 생각해주니 시즈카도 편하기는 했기에, 다행이라는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친구는 곧 시즈카의 뒤를 보고는 내일 보자며 자리는 급히 떠났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배웅해주고는 뒤를 돌자 졸린 듯 하품을 하는 사나다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아무래도 사나다가 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떠난 것 같았다.


"안 들어가고 뭐해?"

"잠깐 친구가 불러서."

"잃어버린 핸드폰 찾았어."

"어?"


갸우뚱한 표정으로 사나다를 빤히 바라보자 손바닥에 익숙한 핸드폰이 쥐어졌다. 어딜 뜯어봐도 자신의 핸드폰이었다.


"어떻게 찾았어?"

"우리 과 선배가 갖다 주라던데."


아, 숨긴 게 그쪽이었구나.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에 조금 기분이 나빴지만, 순순히 사나다에게 돌려준 걸 보아선 어지간히 사나다가 박력 넘치게 무서웠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요란한 겉모습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니.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 따로 말을 안 거는 편이었잖아. 이제 괜찮아? 뭔가 다른 이유 있던 거 아니야?"

"어차피 어제 그 일로 우리 과에서도 소문 퍼진 거 같고, 됐어."

"그럼 오늘은 같이 앉을래?"

"그래."


오랜만에 옆에 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신이 나서 살짝 웃어 보였다. 자리는 적당히 교수님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앉았다. 본래라면 앞쪽 자리에 앉았겠지만, 사나다는 뒤쪽 자리를 선호하는 편이었으니까.

미리 필기구들을 꺼내두고 교재를 꺼내서 예습해둘까 하려는 찰나, 예상치도 못했던 질문이 사나다를 통해서 들려왔다.


"야, 시즈카. CC가 뭐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런 건 어디서 들었어?"

"같은 과 녀석들이 눈만 마주치면 휘파람을 불면서 외치거든."


귀찮아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사나다의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걱정했던 것보다 같은 과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놀림당하는 것도 그 친근감을 드러내는 것이리라. 물론 사나다가 불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말이다.

사실대로 말해줄까, 모른다고 대답할까. 짧게 고민한 시즈카는 사나다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귓가를 향한 작은 목소리를 냈다. 시즈카가 조그맣게 속삭여주는 목소리를 듣던 사나다는 헤에, 하고 대답하고는 턱을 괴었다.


"이제서야 그렇게 보인대?"


그 한 마디에 깜짝 놀라 사나다를 보자 조금 부끄러워 보이는 듯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키요, 지금…."


괜히 딴청을 부리는 사나다의 팔을 가볍게 치며, 시즈카는 입을 다물었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시즈카."

"왜?"

"진짜 CC 해볼래?"


시즈카의 대답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아주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대답을 대신했다.

알고 지낸 지 6년. 같이 학교에 다닌 것이 3년. 그 긴 시간을 돌아서 커플이 된 1일. 시즈카의 손 위로 겹쳐진 사나다의 손이 그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