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빨강머리 백설공주/오비드림]생일
전력드림 열아홉번째 『생일』
*빨강머리 백설공주의 오비 드림
*오리주 설정 있음
*개인 해석 및 캐붕 주의. 날조 주의.
*급마무리 주의. 퇴고없음 주의.
릴라는 조심스레 오비의 방을 노크했다. 젠의 종자라 스스로 자처하지만 젠이 얌전히 집무실에 갇혀있게 되는 날에는 오비 역시 할 일은 없었기에 금세 문이 열렸다.
"어라, 아가씨. 웬일이세요?"
그 물음에 답하듯 릴라는 안개꽃 다발을 오비에게 내밀었다. 당황했던 표정이 금세 바뀌는 것으로 보아, 오비는 릴라가 꽃을 내밀게 된 이유를 금세 눈치챈 모양이었다. 뒷머리를 긁적일 뿐 도통 받아들일 생각이 없자 꽃다발을 더 내미는 것으로 재촉했다. 곧 꽃다발은 릴라의 손에서 오비의 손으로 넘어갔다.
"아직도 기억하고 계실 줄은 몰랐는걸요."
잊을 리가 없지. 릴라는 굳이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감정을 삼켜내는 것 정도는 언제나 해오던 일인만큼 별다른 어색함 없이 불만이야? 하고 속마음과는 다른 어투를 담담히 뱉었다. 오비는 그럴 리가 없다는 말과 함께 과장된 몸짓으로 살짝 비켜서서 안에 들어오라는 권유를 했다. 평소라면 거부했을 그 권유를,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들인 것은 다른 볼일이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비의 방은 릴라의 방과 비슷했다. 늘어져 있는 개인 소지품 같은 것은 없는, 잠시 들렀다 떠나는 여행자의 방과 같았다. 릴라는 굳이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마침 창가에는 옹기종기 모여 고운 솜털 같은 아게라텀이 꽃병에 담겨있었다. 오비는 릴라가 그 꽃병에 시선을 준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선물 받은 안개꽃을 장식하듯, 아게라텀 주변에 조금씩 꽂아주기 시작했다. 릴라 역시 별다른 말 없이 오비를 도와 안개꽃을 꽂아주는 것에 집중했다.
아주 느릿한 속도로 꽃병에 안개꽃이 다 꽂아져 갈 즈음에서야 릴라는 겨우 입을 열었다.
"올해에도 생일 선물은 필요 없어?"
"꽃다발 주셨잖아요."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어딘가 묘하게 쓸쓸해 보이는 목소리에, 항상 넉살 좋게 대답하던 오비도 말을 멈췄다. 실제로 평소 그녀에게서 쉽사리 보기 힘든 묘한 표정이었다. 무척이나 익숙했던 그 표정은, 그 옛날 섭섭하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 짓던 그녀의 표정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본 탓에 당황한 표정이 눈에 보였던 것인지 그녀는 금세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너는 매년 생일 선물은 필요 없다고 하네."
"매년 챙겨주셨으니까요."
"나는 네가 원하는 선물을 말하는 거야."
"딱히 그런 건 없습니다. 애초에 생일이 없는 제게 생일까지 만들어주고 챙겨주신 건 아가씨잖아요. 그걸로 족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비는 그녀에게 바라는 것이라곤 없었다. 생일이 없다는 말에 처음 만난 날을 생일로 하자는 말에 딱히 긍정하지는 않았지만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매년 그녀는 오비에게 꽃다발을 비롯한 조그마한 선물들을 생일선물이랍시고 주곤 했다. 오비에게 무척이나 필요했던 물건들은 아니었지만, 마음만으로도 기뻤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생일을 만들어주고, 유일하게 가까웠던 그녀에게 축하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평상시에도 그랬지만 생일이라며 온 신경을 써주는 게 못내 기뻤기 때문에, 오비는 더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오비가 원하는 생일선물을 언제나 주고 있었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
오비는 흘끗, 릴라의 눈치를 봤다. 아게라텀을 만지는 릴라의 표정 너머로 아까의 쓸쓸한 표정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너는 항상 그랬지. 내가 원하는 건 항상 들어주는데도, 너는 내게 원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
"딱히 그렇지는…."
"네 주관이 없는 것이 아닌데, 내게 말해주는 법이 없었어. 나는 너의 그런 점이 정말…."
릴라는 딱히 그 뒷말을 잇지는 않았지만, 오비는 그 뒷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짐작하지 못하는 것이 더 어려울 터였다. 많은 사람에게 미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사는 거야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서는 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오비는 오히려 그녀가 말을 잇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녀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에 큰 안도감을 얻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가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한 자신에게 자기혐오를 느꼈다.
순간 그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릴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평소처럼 살짝 미소 지어 주었다. 마치 자기혐오 같은 것은 하지 말라는 것처럼.
"미안. 생각해보면 네가 내게 무엇이든 이야기해주길 바라는 건 내 욕심에 가까운 일이네."
그녀는 금세 사과를 건넸다.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릴라는 '꽃병에 꽂아두고 이제 와 말하기는 뭐하지만, 물을 갈아주는 게 좋겠어' 하고 빠르게 말을 건네고는 조용히 오비의 방문 앞에 섰다. 그러곤 뭔가 더 덧붙일 말이 있는 것처럼 다시금 제 뒤에 있는 오비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래도 오비. 한 번쯤은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선물을 해줄 수 있게 해줘. 네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건 내가 너무 비참해."
닫히는 문 너머로 그녀는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 그 좁은 문틈 너머로 릴라의 표정을 본 오비는 자신이 뭐라고 말을 해주었어야 함을 알았다. 그러나 문은 이미 닫혔고, 뛰쳐나가 그녀를 잡고 이야기하기엔 자신이 용기가 없었다. 언제나 진심을 숨겨왔는데, 이제 와서 속내를 내비치면 지금껏 숨겨온 모든 것들이 쏟아질까 봐 무섭기까지 했다. 오비는 그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아가씨는 언제나 제가 원하는 선물을 주셨는걸요."
굳게 닫힌 방문을 보며 오비는 쓰게 웃었다. 이 말을 그녀에게 직접 했더라면, 어떤 표정이었을까.
오비에게 다른 생일 선물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비가 원한 것은 언제나 릴라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예기치 않게 헤어지게 된 그 기간을 빼면, 릴라는 언제나 오비가 가장 원하는 생일 선물을 해주고는 했다. 생일 날 뿐만이 아니라, 언제나. 언제나.
"제 생일 선물은… 아가씨가 제 곁에서 떠나지 않는 거면 충분합니다."
오비는 창문을 통해 백설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걸어가는 릴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 자신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올해도 그가 원하는 선물을 주었다.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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