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빨간머리 백설공주/오비드림]당신에게 묻다
전력드림 열네번째 소주제 『당신에게 묻다』
*오리주 설정 있음
*개인 해석 및 캐붕 주의. 날조 주의.
날이 무더워져서 창문을 열었다. 밤이라서 그런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시원했다. 창문 앞에 있는 큰 나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약한 가지가, 나뭇잎들이 서로 스치며 나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더욱 시원하다고 느꼈다.
아주 약하게 불어대던 바람이 금세 세차게 변해 머리카락마저 흩날리게 만들 때에 나무 위에 누군가가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느껴졌다. 바람결에 나부끼던 나뭇잎 소리에 묻혀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금세 경계심을 갖고 항상 몸에 소지하던 암기를 꺼내 들고 자세히 살폈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닌 왕궁이었기에 더욱 경계심이 일었다. 자신을 노리고 온 자객이라면 괜찮지만 젠 왕자나 백설을 노리고 온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적이라면 죽이고, 수상한 자라면 잡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앞으로 내밀자 익숙한 등이 보였다.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안도였다. 두 번째로 든 감정은 어색함이었다. 적이 아니었기에 다행이었지만,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망보고 있어, 오비?"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가며 시선이 마주쳤다. 오비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몸을 빙글 돌렸다.
"아이쿠. 여기가 아가씨 방 앞이었나요? 그것까지는 몰라서."
거짓말. 오비의 성격상 그런 것조차 몰랐을 리가 없기에 조용히 그의 거짓말을 덮어두기로 했다. 하지만 참 알기 힘든 사람이었다. 분명 대하는 게 껄끄러울 텐데도, 이 창문이 자신의 방과 연결된 곳이란 것을 알았을 텐데도 굳이 언제든 들킬 수 있는 이 나무에 앉아있었다. 마치 발견해주기 바란다는 듯이.
오래전 주종관계였던 사이는 파기된 지 오래였지만 오비는 아직도 자신을 예전의 고귀한 아가씨를 대하듯 대접했다. 지키지 못했단 죄책감 탓인지, 단순히 비꼬는 것인지, 아니라면 유일하게 이쪽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인 만큼 잊지 않겠다는 것인지. 어느 쪽 이유든 오비는 항상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약간의 껄끄러움이 묻어났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있는 것처럼 선을 그어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내 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나무 위에서 참 여유롭네."
"이것 참, 고의가 아니라니까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을 걸자 오비 쪽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이 되돌아왔다.
"망을 보고 있었던 거야? 왕궁 안이잖아. 굳이 망을 볼 필요는 없을 텐데."
"망이라기보다는 밤 산책이죠. 잠이 안 왔거든요."
"산책이란 건 나무 위에 계속 앉아있는 걸 산책이라고 하지 않아."
"그럼 휴식이라 치죠."
구태여 말싸움을 하듯 계속 따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오비도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는데도 정적이 계속되니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오비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과거의 기억 속 오비는 언제나 함께 실없는 대화를 해왔기에 비교될수록 더욱 비참해졌다. 같은 사람과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데도, 너무나도 달랐다.
"경치가 어때?"
"괜찮네요."
"그래? 나도 거기로 넘어갈까?"
창문 위에 올라오자 오비가 기겁하는 것이 보였다. 위험해요, 아가씨. 오비의 만류가 무색하게 이미 몸은 나무를 향해 뛰어오르고 있었다.
안정적으로 가지에 착지하고 오비에게 걸어오자 정말 당황했다는 표정이 점점 뚜렷하게 보였다. 그 당황함에는 걱정이 스며들어 있어서 조금 기뻤지만,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놀란 표정이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가씨는 여자라는 걸 인지해주세요. 다친다고요"
"다치지 않아. 백설이라면 모를까 ."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데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걸."
결국 오비가 한 발짝 물러섰다. 아가씨가 이겼다며 항복을 내뱉는 오비를 보며 저도 모르게 속 안에 숨겨왔던 진실을 흘렸다.
"오비, 더는 예전처럼 나를 고귀한 아가씨 취급해줄 필요는 없어."
지켜주지 않아도 돼. 덧붙인 말에 오비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 말이 상당히 큰 상처로 다가왔을지, 단순히 저도 모르게 예전처럼 대하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을지는 몰랐다. 한순간 괜히 말했다 싶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말이었다.
"오비는 이제 젠 왕자님과 백설을 지켜야 하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일 뿐이고, 오비에게도 왕자라는 새로운 주인이 생겼다. 언제까지고 이쪽을 신경 쓰다가 현재 주인과 그 연인을 지키지 못한다면 꼴불견일 뿐이다. 자신은 더 이상 지켜주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기 위해 강해졌다.
그 날을 기점으로 살기 위해 강해졌다. 더는 누군가 지켜줄 필요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도 충분히 제 몸을 건사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길렀다.
더 이상 오비의 등 뒤에 숨어 보호받기만 하는 공주님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은….
"있잖아, 오비."
옛날의 나는 네가 생각하기에 어땠어? 그때의 나는 좋아했어? 나와 있는 게 즐거웠어? 아직도 내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 아직도 나를 지켜주고 싶어?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만큼 좋아하고 있어?
지금의 나는 너에게 지킬 가치가 있어?
"부르셨나요, 아가씨?"
한참을 멍하니 있자 오비 쪽에서 다시 말을 건네왔다. 눈동자 너머로 엿보이는 걱정에 빙그레 웃어 보이며 속내를 다시 삼켰다.
"앞으로 이 나무 위에 오르게 되면 인기척이라도 내줘. 적인 줄 알았단 말이야."
"저도 죽고 싶지는 않으니 명심하죠."
묻고 싶었다. 묻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다. 그런데도 물을 수가 없었다. 오비에게 묻는다면 분명 화제를 돌리며 대답하길 피할 것이 분명했다. 그랬기 때문에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거절이라도 받고 싶지 않았다. 참을 수 없이 좋아하기 때문에.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숨겨버린 마음과 묻고 싶은 것들의 숫자만큼 별빛이 빛났고, 달빛은 눈이 시릴 정도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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